한류는 불법을 타고...베트남에서의 한류

한류는 불법을 타고...베트남에서의 한류

Image by kurt duschek from Pixabay

처음 베트남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다. 점심시간이 1시간 정도 주어졌는데 밥을 먹고 오면 저마다의 휴식을 취했다. 자는 분도 있었고 페이스북이나 게임을 하는 분도 있었고 사람들과 커피 한잔하면서 수다를 떠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몇몇 여직원이 드라마 "도깨비"를 보고 있었다. 베트남에 왔을 당시 가장 인기 있던 드라마였다. 베트남에 오기 전부터 동남아에 한류가 유명하다고 알고 있었기에 깜짝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런닝맨이나 한국 드라마를 보는 베트남 사람들을 종종 봤으니까. 

"도깨비 좋아하세요?" 

"네! 한국 드라마 좋아해요."

한류가 얼마나 베트남 사람들에게 알려졌는지 궁금해서 드라마를 보던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그런데 이거 어디서 보는 거예요? 베트남 자막도 있네요." 

도깨비 드라마가 베트남에도 방영하는 건가? 

"인터넷으로 봐요. 이거 말고도 거의 다 볼 수 있어요." 

"네?"

직원이 소개해준 곳은 한국 드라마를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사이트였다. 지난 드라마도 다 볼 수 있었고 최신 드라마도 베트남 자막까지 달려서 다 볼 수 있었다. 물론 무료였다. 그 이후 다른 직원들이나 한국 드라마나 예능을 보는 베트남 사람들을 보면 어디서 보는지 물어보았다. 저마다 똑같은 말을 했다. "인터넷에서요. 물론 공짜로요."

 

베트남 한류 콘텐츠 사이트 / ⓒ유영준

하루도 안 지나 올라오는 한류 콘텐츠

지인이 가르쳐준 사이트를 들어가 보았다. 온통 베트남어로 되어 있어도 알아볼 수 있다. 친숙한 한국어로 되어 있는 포스터들이 죽 나열이 되어 있다. 드라마를 클릭하면 지난 회차부터 최신화까지 베트남어로 다 볼 수 있다. 와이파이 상태만 좋다면 바로 끊김 없이 볼 수 있다. 물론 약간의 광고를 봐야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한국에서 방영한 지 하루도 안 되어 베트남어 자막까지 달려서 올라온다. 대단하다. 가장 유명한 런닝맨을 포함해 한국 드라마부터 영화까지 전부 볼 수 있다. 물론 무료다. 한국에서 만든 콘텐츠를 불법 유통해 광고로 돈을 벌고 있다. 

불법이 있었기에 한류도 있었다. 

TV로도 물론 한류 콘텐츠가 방영되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급격한 보급으로 주 타겟층인 10~20대들은 스마트폰으로 콘텐츠를 익숙하게 접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아르바이트나 직원들이 쉬는 시간이나 손님이 없을 때는 어김없이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경비조차 스마트폰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다. 주로 유튜브나 페이스북을 하는데 꽤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한국 콘텐츠를 보고 있었다. 특히 런닝맨은 10~20대 사이에서는 가장 유명한 예능 중 하나이다. 베트남판 런닝맨도 제작된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궁금해서 어디서 보는지 물어보면 어김없이 불법 사이트를 통해 시청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 베트남에서 급격한 한류 붐을 일으키는 데 큰 일조를 했다. 

콘텐츠에 돈을 지불하는 인식 부족

회사에서 일하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가 베트남에서 매우 유명한데 축구 시청은 인터넷으로 공짜로 보고 있었고, 음악도 공짜로 듣고 있었고, 영화나 드라마는 당연하고, 게임도 공짜로 받아서 하는 데다 소프트웨어까지 불법 파일로 설치해서 이용하고 있었다. 한국도 이러한 인식이 개선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베트남은 아직 많은 부분에서 인식이 부족했다. 

베트남 콘텐츠는 재미없어요. 

한류 콘텐츠가 왜 베트남에서 인기가 많은지 궁금했다.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지만 주변 지인들 혹은 한류를 시청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물어보았다. 공통적인 대답은 바로 '재미'였다. 베트남은 1당 체제의 사회주의 국가이다. 모든 언론과 콘텐츠들은 국가의 검열을 받아야 한다. 국가의 사상과 방향에 맞지 않는 것들은 칼같이 제약한다. 게다가 미디어는 국가 체제 선전에 주요한 수단이다. 그렇다 보니 국가 입맛에 맞거나 애국심 고취와 같은 콘텐츠들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 많은 베트남 사람들은(특히 10~20대) 베트남 TV에서 하는 콘텐츠를 즐겨보지 않았다. 그런데 한류 콘텐츠가 떡 하니 등장했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무시무시한 속도로 베트남 사람들에게 공급되었다. 한류는 재밌다. 한국 콘텐츠들이 물론 재밌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베트남 콘텐츠의 성장이 제한적이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컸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그렇다고 규제를 하고 인식을 개선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베트남의 몫이다. 한국 역시 콘텐츠에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이용하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베트남 역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당장 콘텐츠산업이 베트남에 진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불법 사이트를 잡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하나를 잡으면 다른 하나가 생길 것이고, 이미 무료에 길들여진 베트남 사람들은 계속 무료 사이트를 찾아다닐 것이다. 베트남 정부와 지속해서 콘텐츠 저작권 규제와 인식 재고를 하되, 이러한 점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르게 생각하면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불법적인 일을 벌일까? 

콘텐츠산업들의 베트남 진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갑자기 해외에서 난리가 난 적이 있다. 당시 해외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한국 사람들만 보면 강남스타일을 춰대서 기분이 좋기도 하면서 난처한 때도 있었다. 싸이는 강제로 해외 진출 당했고(?)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콘서트에 서기도 하면서 월드 스타가 되었다. 유튜브의 힘은 싸이뿐만 아니라 방탄소년단, 블랙 핑크 등 한류의 붐을 전 세계에 퍼뜨렸다. 일부러 만들기도 힘든 한류가 자연스럽게 전 세계에 퍼졌다. 자발적으로 말이다. 

한국의 가수들이나 배우들이 베트남뿐만 아니라 동남아 전체에 콘서트나 팬 미팅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진출 하고 있다. 한류 콘텐츠들이 동남아를 일부러 겨냥해 만들지는 않았다.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었겠지만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동남아 전역에 퍼졌다. 런닝맨은 동남아에서 거의 월드 스타급 대우를 받고 한류 가수들이 온다고 하면 공항이 마비될 정도다. 비록 불법적으로 콘텐츠가 퍼진다고 해도 이렇게 형성된 한류 콘텐츠 시장을 최대한 잘 이용해서 베트남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지갑을 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박항서를 좋아하는 것이지 한국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베트남에서 한류 콘텐츠는 10~20대 여성에게 집중되어 있다. 사실 내가 만난 20~30대 남자들은 한류를 거의 모를뿐더러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박항서가 ‘위아 더 월드’를 만들었다. 전 국민에게 한국에 대한 호감 분위기를 형성했다. 개인적인 생각은 박항서가 베트남에 한류 붐 기여를 더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웬만하면 움직이지 않는 남성층을 한 번에 같은 편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지금도 그랩을 타거나 처음 만나는 베트남 남자분들 중 적지 않은 사람이 박항서를 알고 ‘엄지 척’하며 호감을 표시했다. 그런데, 정확히 생각해보자면 박항서를 좋아하는 것이지 한국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히딩크를 좋아한다고 네덜란드를 좋아하거나 네덜란드 제품을 막 구입하지 않듯이 말이다. 한류 붐을 업고 베트남에 진출하는 분들은 주의했으면 하는 점이다. 

한류 붐이 있다는 것은 방탄소년단이나 런닝맨을 좋아하는 것이지, 한국 제품을 좋아하는 것과 연결 지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 대한 호감은 분명히 있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우호적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갑을 여는 것과는 별개라는 것이다. 박람회에 갔다가 단순히 한국 제품이니 베트남 사람들이 좋아할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었다. 아니다. 호감과 지갑을 여는 것은 별개다. 한국에서도 인기 없으면 베트남에도 없다. 한류 콘텐츠를 통해 간접적으로 마케팅을 하거나 직접 베트남 현지에서 마케팅해야 한다. 

베트남에서 많은 한국을 만날 수 있기를 

베트남에는 정말 많은 한국 식당들과 한국 화장품, 한국 관련 제품들을 만날 수 있다. 한류 콘텐츠 붐을 타고 강제 진출 당한 곳도 있고, 한류 붐을 기대하고 진출한 분들도 있다. 하지만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아직 매우 낮은 점과 한류와 한국은 별개라는 점을 인지하고 베트남 진출을 하셨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베트남에서 한국 제품들과 한류 콘텐츠가 인기를 많이 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크리에이터 유영준[email protected]

2016년 12월 베트남 호찌민에 처음 왔습니다. 호찌민의 한국 회사에서 일을 했고 현재 호찌민에서 베트남의 산업과 트렌드 및 여행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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