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선 모든 게 '노 쁘라블럼'

인도에선 모든 게 '노 쁘라블럼'

인도 캘커타 시내의 풍경 / ⓒ유영준


세계여행을 하면서 가장 인상 깊은 곳이 어디였냐고 물어보면 10에 9 정도는 인도라고 말했다. 다른 여행지들과 달리 내 예상이 단 한 번도 맞은 적이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무계획이 계획이라는 영화 기생충의 명언처럼 차라리 무계획이 곧 계획이 되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 만큼 친구들에게 여행 이야기를 풀기에 최고인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가장 신나게 이야기하는 곳이 산티아고 순례길과 함께 이곳 인도다. 

수많은 인도 에피소드 중에 가장 강렬한 기억은 바로 'No Problem'이다. 인도식 영어 발음은 기존 미국식이나 영국식과는 달라서 알아듣기 더욱 힘들었다. 그나마 제대로 알아들었던 단어가 바로 '노 쁘라블럼'이다. 인도에서는 노 쁘라블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노 쁘라블럼이기 때문이었다.


2014년 서울시 인도 대사관의 정문 / ⓒ유영준

대사관 내의 인도비자접수센터 / ⓒ유영준


인도 여행을 처음 생각할 때부터 봉사활동을 하며 여행을 할 계획이었다. 그러다 보니 최대 3개월 이상 체류가 필요했다. 하지만 인도 무비자 방문 기간은 한 달이었다. 게다가 내가 여행하던 2014년 4월 전에는 온라인으로 신청하고 비자센터에 방문 예약 후 직접 방문을 해야 했다. 그리고 비자를 우편으로 받아야 했다. 단순 여행비자의 경우 신청만 하면 되지만 봉사활동을 위해 취업 비자를 신청해야 했고, 나는 난생처음 대사관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인터뷰 당일, 예상 질문과 답변을 외우고 갔지만, 몹시 떨렸다. 여행할 당시엔 토익은 420점에 영어만 보면 울렁거리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대한 영어 잘하는 척하기 위해 예상 답변을 달달 외웠다. 

대사관에 찾아가 인터뷰 이야기를 하니 나를 지하로 안내했다. 지하에는 굉장히 협소한 장소에 작은 방마다 책상이 놓여 있었고 심사하는 분들이 앉아 있었다. 나는 배정된 곳으로 들어가 바로 인터뷰를 시작하였다. 

내가 만난 분은 콧수염이 매력적인 인도분이셨다. 그 뭐랄까, 인도 영화에 나오는 부자 느낌이랄까.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앞에 놓인 의자에 앉을 것을 권하였다. 잔뜩 긴장하며 대사관의 첫 질문을 기다렸다. 분명 인도에 무슨 이유로 갈려고 하는 건지 물어보겠지. 그렇다면...

"^%*&((^&*?"

그 순간 느낌이 위의 알 수 없는 기호와 같았다. 대사관님이 웃으면서 질문을 하는데 정말 단 한 마디도 못 알아들었다. 2~3번 다시 들었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이것이 인도 영어인가. 아무리 영어를 못해도 이 정도로 못 알아들을지 몰랐다. 

"노 쁘라쁠럼"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자 대사관님이 나의 여권을 보시면서 외친 한 마디다. 그 단 한 마디가 유일하게 내가 알아들은 영어였다. 정말 그랬다. 

이대로 가면 분명 인터뷰에서 탈락하고 봉사활동도 못 갈 게 뻔했다. 대사관님의 질문이 뭐든 간에 그냥 내가 준비한 대답을 이야기했다. 나는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인도에 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취업 비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여행도 더 하고 싶어서 3개월 이상 비자를 내어주기를 희망한다는 요지의 내용이었다. 

"노 쁘라쁠럼" 

내 말을 알아들은 건지 아닌 건지 모르는 애매한 대답. 10분간 서로 일방적인 대화가 이어지고 나서 대사관님은 밖에 있던 한국인 직원을 불렀다. 직원분이 간단히 통역해 주셨고, 나는 최대한 비자를 길게 받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직원 덕분에 그런 건지, 내가 손짓·발짓과 표정까지 최대한 불쌍하게 지어서 그런 건지 인터뷰는 무사히 마쳤고 나는 무려 6개월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봉사활동으로 6개월 비자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봉사활동을 연결해주는 워크캠프 측에서는 어떻게 받을 수 있었냐고 문의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노 쁘라블럼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이제 시작이었다. 


콜카타의 마더 테레사 하우스로 가는 길 / ⓒ유영준


인도에서 가장 인상적인 말은 바로 "노 프러블럼"이다. 문제없다는 이야기인데, 이게 어느 상황에서나 다 등장해서 문제이다. 내가 인도에 첫발을 내디딘 곳은 마더 테레사가 봉사활동을 하였던 캘커타였다. 이곳에는 마더 테레사의 유지를 이어받아 마더 테레사 하우스가 설립되었고, 지금도 수많은 봉사자와 후원자들이 사람들을 돌보고 있는 곳이다. 나는 이곳에서 약 한 달가량 봉사활동을 하기로 계획했다.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서 봉사활동을 하려면 조건이 있다. 먼저 미리 신청되지 않는다. 무조건 1주일 중 지정된 요일과 시간에 찾아와서 봉사활동 신청을 해야 한다. 하루만 해도 되고 몇 달을 해도 되지만, 수료증을 받으려면 일정 기간 이상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언제든지 그만두어도 괜찮아서 자신이 마음 가는 대로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직접 방문 신청이라는 점이었다.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인도 사람들 / ⓒ유영준


내가 도착했던 날은 신청을 받는 날이 아니었다. 그래서 여행자 거리에 숙소를 구하고, 다음날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 봉사활동을 신청하기로 했다. 문제는 여행자 거리에서 마더 테레사 하우스까지 거리가 걸어서 20분가량 걸리는 거리였다. 핸드폰에 의존하지 않고 여행하고 싶어 유심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로지 길을 물어서 다녀야 했다. 

다음날 마더 테레사 하우스로 찾아가야 하는데, 길을 정확히 모르겠다. 그래서 길 가던 중 인도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다들 길을 가르쳐주는데 아무리 가도 마더 테레사 하우스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열정적으로 노트에 길까지 그려가면서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길을 잃고 있었다. 

4번째 물어본 인도 사람이 길을 가르쳐주는데 확실히 이전 사람들과 다른 길을 가르쳐주었다. 그렇다. 이 친구들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계속 잘못된 길을 가르쳐주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4번째 인도 사람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제대로 찾아갈 수 있었다. 

"노 쁘라블럼" 

그 이후에도 영화관을 찾아간다든지, 지하철을 탄다든지, 주변 관광지를 가볼 때마다 인도 사람들은 '아무 문제 없이' 잘못된 길 혹은 잘못된 정보를 가르쳐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든 문제는 다 "노 프러블럼"이랄까. 나중에는 최소 3명 이상에게 물어보고 가장 많이 나오는 곳으로 가든지, 아니면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 미리 지도를 파악하고 출발했다. 


인도에서 지하철을 탈 때는 지도 앱으로 미리 파악하고 가자. / ⓒ유영준


인도 사람들 특유의 몸짓이 있는데, 바로 고개를 옆으로 까딱하면서 어깨를 으쓱거리는 것이다. 긍정의 의미인데, 'Yes' 혹은 'No problem'의 의미를 말로 하지 않고 몸짓만으로 소통하곤 했다. 인도에서 한 달 반쯤 되었을 무렵 나는 캘커타에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바라나시를 거쳐 뉴델리까지 도착하였다. 어느새 약간의 힌디어를 할 줄 알게 되었고, 뜨거운 인도 태양 덕분에 얼굴은 새까맣게 타 있었다. 

뉴델리 관광을 위해 한 지하철역에서 내려 역 밖으로 나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한 인도 사람이 나에게 길을 물어보는 것이었다. 영어도 아니고 힌디어였는데 지역 이름을 이야기하며 물어보는 게 길 물어보는 것 같았다. 여기서 외국인이라 모른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최대한 가르쳐주어야 할까. 저쪽으로 가는 길이 맞냐고 물어보는데 이미 지나온 곳이라 대강 맞는 방향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옆으로 까딱하는 몸짓을 취했다. 그냥 한번 해보고 싶었달까.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가는 인도인 일행들을 보고, 내가 인도 사람이 되어 버린 건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어느 인도인이 나에게 길을 물어왔던 뉴델리 시내 / ⓒ유영준


인도에 도착한 지 2달쯤 지나니 인도 사람들이 나를 북인도 사람으로 오해하는 일이 많아졌다. 장점은 나에게 외국인 가격이 아닌 현지인 가격을 이야기한다는 것이지만 단점은 아무도 나를 외국인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웃기지만 슬프다고 할까. 

인도에서 "노 프러블럼"은 정말 많이 들었다. 인도 사람들은 거절을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드는 게 인도라서 노 프러블럼인가 싶기도 하였다. 길 물어봐도 노 프러블럼. 물건을 살 때도 노 프러블럼. 심지어 사기를 칠 때도 노 프러블럼이었다. 


크리에이터 유영준 / [email protected]

2016년 12월 베트남 호찌민에 처음 왔습니다. 호찌민의 한국 회사에서 일했고 현재 호찌민에서 베트남의 산업과 트렌드 및 여행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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