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의 천사들 ②

마닐라의 천사들 ②

봉사활동을 함께했던 Ron과 친구들 / ⓒ유영준

Ron과 Jiggs

4일간의 만남을 뒤로하고 두 번째 호스트인 Ron을 만나러 갔다. 정든 곳을 떠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설렘도 있었다. 첫 만남은 강렬했다. 나를 데리러 온 Ron 훤칠한 키에 옷도 깔끔하게 입고 있었다. 현대 차를 타고 있었고, 인터넷이 안되던 나를 위해 자신의 아이폰으로 핫스팟을 연결해주었다. Ron은 결혼한 지 1년이 지났고, 현재 마닐라 시내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금·토·일 동안 마닐라에서 1시간 조금 넘게 떨어진 자신의 고향 팜팡가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와이프 가족과 하루, 자신의 가족과 하루 이렇게 말이다. 오늘은 먼저 와이프 가족들 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내일 자신의 집으로 간다고 말해주었다. 주말마다 부모님을 (그것도 양가의 부모님을) 뵈러 간다는 말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워도 잘 안 가게 되는 곳이지 않은가. 

Jiggs의 집에서 함께 / ⓒ유영준

먼저, ron의 와이프인 jiggs를 만났다. 본명은 아니고 별칭이 jiggs였다. 처음에는 한국인인 줄 알았다. 얼굴도 하얗고 전혀 필리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와이프는 소아과 의사였다. 우리는 함께 jiggs의 집으로 향했다. 

jiggs의 집은 내가 살면서 본 집중에 가장 좋은 집이었다. 그 드라마 보면 나오는 저택 있지 않은가. 문을 열어주는 경비가 있고, 집 안에는 메이드가 몇 명이나 있었다. 대궐 같은 집 마당에는 외제 차가 3대나 있었고, 방이 몇 개인지도 모를 정도로 많았다. 적게 잡아도 6개는 있는 듯했다. 내 평생 살면서 필리핀에서 이런 집에 가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집은 3대가 사는 대가족이었고, 모두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저녁 식사로 이어졌다. 푸짐한 저녁과 빵빵한 와이파이, 내 옷들 빨래에 나를 위해 따로 방을 내어주었다. 불과 어제까지는 누우면 꽉 차는 집이었는데 전혀 다른 환경으로 급격히 변했다. 적응이 안 되어, 어안이 벙벙했다. 고급 마사지를 즐기고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그들은 분명 필리핀의 상류층이었다.

Ron과 Jiggs는 한국을 매우 좋아하는 친구들이었다. Ron의 집에 갔을 때, 신혼여행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신혼여행으로 한국을 갔던 것이다. 그리고 한 차례 더 한국을 갔었고, 내년에도 한국을 갈 예정이라고 했다. 사진들을 구경하면서 평소 익숙한 서울과 부산의 풍경들이 외국인들 눈에는 신기하게 보였다는 사실이 재밌었고, 한국을 이토록 좋아하는 것에 감사했다. 여행을 다녀온 뒤 2년 후 우리는 다시 부산에서 만날 수 있었다. 

 

팜팡가, 화산의 흔적 

팜팡가는 마닐라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다. ron과 jiggs의 고향인 이곳은 20년 전 화산 폭발의 피해를 받은 곳이라고 했다. 다행히 ron과 jiggs 쪽은 큰 피해가 없었지만, 이곳 동네가 큰 피해를 받아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말해주었다. 아침에 그 흔적들을 돌아보기로 했다.

화산 폭발로 인해 반쯤 묻혀버린 팜팡가 성당 / ⓒ유영준

아직도 그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팜팡가 성당에 도착했다. 화산 폭발로 인해 성당의 반이 묻혀버려서 지금은 남은 반만 그대로 쓰고 있다고 한다. 성당 옆에는 그 당시의 폭발 흔적을 전시하고 있는 작은 박물관도 있었다.

출입문이 되어버린 창문 / ⓒ유영준

전시 중인 그림들 / ⓒ유영준

반쯤 묻혀버린 성당 / ⓒ유영준

성당에 들어가는 문은 묻혀버려서 들어가지 못하고, 옆 창문이 지금은 출입문이 되었다고 한다. 폼페이 화산 폭발을 연상케 하는 이곳의 화산 폭발은 그 당시의 눈물과 복구 노력이 이 성당을 통해 남아 있었다. 성당을 가면서 아직도 복구가 안 되어 있는 곳도 조금씩 보였다. 나와 Ron 부부는 이곳 성당에서 피해받은 마을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고 자리를 떠났다.

 

고아원 봉사활동

Ron이 일요일에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 후, 성당 성가대 사람들과 함께 고아원 봉사활동을 간다고 했다. 나도 함께 미사를 본 후 Ron의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친구의 집으로 가서 함께 고아원에 줄 밥을 만들었다. 고아원에 가는 이유는 친구들 중 한 명이 오늘 생일인데, 고아원에서 자라서 생일을 기념해 고아원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크게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생일날 고아원에 봉사활동이라니? 나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게다가 상류층이라 생각했던 Ron의 친구들도 당연히 상류층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친구들은 모두 돈을 떠난 우정 같았다. 다양한 친구들이 모여 있었고, 돈의 유무를 떠나 진정으로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아이들의 식사 시간 / ⓒ유영준

싸이의 젠틀맨 춤을 추는 아이들 / ⓒ유영준

고아원에 도착하니, 똘망똘망한 눈으로 우리를 맞이해주는 아이들이 있었다. 정말 어린 아기부터 초등학교 6학년쯤 되는 친구들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내가 귤을 던져서 입으로 받아먹는 묘기를 보여주자, 신기하게 쳐다보던 아이들이 저마다 따라 하면서 마음을 열어주었다. 말은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오로지 몸짓 하나면 충분했다. 우리가 만든 밥을 함께 먹고, 작은 운동회도 개최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준비한 것이 있다고 했는데, 싸이의 젠틀맨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익숙한 노래에 나도 같이 춤을 추어주었다.

봉사활동을 했던 Ron의 친구들과 함께 / ⓒ유영준

나는 봉사활동은 좋아하지는 않는다. 점수나 필수로 해야 해서 억지로 한 적은 있지만, 먼저 하겠다고 나선 적은 없었다. 나도 힘든데 남까지 어떻게 챙겨 주냐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처음에는 재미있을 것 같아서 따라갔지만, 어느새 나는 봉사활동을 즐기고 있었다. 재미를 발견했다고 할까? 아이들의 티 없이 맑은 눈동자를 바라볼 때 나의 이기심이 조금은 녹지 않았나 싶다. 베푸는 마음은 나보다 Ron과 친구들이 태평양같이 더 넓었다. 나는 여전히 속 좁은 아이였다. 

 

새로운 도전, 발룻 

봉사활동이 끝나고, 친구들이 다 함께 Ron의 집에 모여 저녁을 먹었다. Ron이 집에 오기 전에 “extraordinary 메뉴가 있는데, 먹어볼래?”라고 물어보았는데 나는 궁금함에 일단 먹는다고 말했다. 음흉한 웃음을 지어 보일 때 알아봤어야 했다. 저녁을 다 먹고 난 후, 계란 꾸러미를 가져오더니 다들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뭐랄까, 앞으로 나올 피해자를 바라보는 악동 같은 눈빛들이랄까. '발룻'이라고 소개해주는 계란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계란이었다. Ron의 친구 중 한 명이 시범을 보여주었다. 계란 윗부분을 깨서, 안에 즙부터 빨아 마시고 내용물을 먹으면 된다고 했다. 아 참, 말 안 한 것이 있다. 살아있을 때 삶아버린 것이다. 즉, 부화 직전에 삶은 것이라 안에 병아리가 그대로 들어있다는 것이었다. 고단백질에 정력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고 한다. 

한 번의 경험으로 충분했던 발룻 / ⓒ유영준

즙을 마시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병아리를 먹어야 한다는 것에 쉽게 손에서 떠나지 못했다. 다들 부추기는데 이 상황에서 포기할 수도 없었다. 정체를 알기 전에 큰소리쳐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 어느 상황에서든지 말이다. 덜덜 떨리는 손을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순식간에 삼켰다. 박수가 이어졌다. 골탕 먹이고 좋아하는 박수로 느껴졌다. 자세한 느낌은 직접 먹어보시길. 자세히 묘사하고 싶지는 않다. 확실한 것은 한 번 더 먹고 싶지는 않다. 맛을 떠나서 말이다.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한 번쯤은 추천한다.

 

가장 높은 곳에서의 가장 높은 행복 

필리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사는 친구들을 만났다. 나는 Ron과 Jiggs의 집을 보고, 이 사람들을 상류층으로 단정 지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따라오는 상류층의 이미지를 그대로 적용했다. 내 기준에서 바라보는 시각으로 그들을 판단했다. 하지만 Ron은 높은 곳에서 더 높은 행복을 나누고 있었다. 나누는 행복에 대해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친구들을 재력에 상관없이 사귀었고, 고아원 출신의 친구도 있었으니 말이다.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지 않았다. 친구들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일날 고아원 봉사활동을 가는 친구들. 모두가 즐겁게 일요일을 반납하여 밥을 만들고 봉사활동을 하고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나누었다. 손에 꽉 쥐고 놓지 않고 있던 나에게 있어서는 Neil에 이어 두 번째 충격이었다. 더군다나 필리핀에서 겪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고마워, Ron & Jiggs / ⓒ유영준


크리에이터 유영준[email protected]

2016년 12월 베트남 호찌민에 처음 왔습니다. 호찌민의 한국 회사에서 일을 했고 현재 호찌민에서 베트남의 산업과 트렌드 및 여행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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