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여행 in 사파 ①

퇴사 여행 in 사파 ①

너무 추웠던 18년 2월의 사파 / ⓒ유영준

사파 여행에 이용한 항공기 / ⓒ유영준

 

1. 가기 전에 퇴사 여행하자! 

18년 2월, 퇴사한 지 3주가 지난 때였다. 처음에 익숙하지 않던 일상도 어느새 익숙해졌다. 퇴사 고민을 하던 지인이 퇴사 소식을 알려왔다. 서로의 퇴사를 축하하며 앞으로 멋진 미래를 응원하였다. 퇴사하고 난 이후 나는 실컷 놀고 있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뭐랄까 한번 제대로 놀아보고 시작하자는 마음이었다.

지인과 집 근처에서 커피 한잔하며 수다를 떨고 있던 날이었다. 지인의 하노이 시절 이야기를 듣던 중 문득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나 하노이는 한 번도 안 가봤지. 생각해보니 베트남에 1년 넘게 살면서 놀러 가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지인은 한국으로 돌아가기까지 한 달도 채 안 남은 상황이었다. 우리는 마지막 추억을 함께 하기로 했다. 퇴사 여행이라 이름 지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사파가 거론되었다. 베트남 최북단 지역의 소수민족이 사는 곳이었다. 높은 고산지대에 위치한 사파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는 프랑스 사람들의 휴양지로도 유명했다. 색다른 베트남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지인이 1년 전 사파를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고 한 번 더 가고 싶어 했다. 특히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판시판 산(해발 3100m 이상)을 가보고 싶었다. 그렇게 퇴사 여행을 사파로 정하게 되었다. 

여행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함께 비행기와 숙박을 예약했고, 대략적인 계획을 세웠다. 빡빡하게 관광하는 게 아닌 여유 넘치는 힐링 여행이 주 테마였기 때문에 느슨하게 계획을 세우고 떠나기로 했다. 여행은 계획 세울 때가 가장 재밌다고 하지 않는가. 모처럼 설레면서 여행 준비를 하였다. 

 

하노이의 북한식당 평양관 / ⓒ유영준

2. 하노이 북한 식당

사파로 바로 가는 비행 편은 없다. 호찌민에서 하노이로 가는 비행기를 탄 후 하노이에서 사파로 가는 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하노이에서 사파까지 버스도 5시간 반 정도 걸린다. 버스는 슬리핑 버스이다. 누워서 갈 수 있게 만들어져 있어서 불편하지 않았다. 

하노이에서 1박을 하게 되었다. 지인은 이전에 하노이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하노이에서 체류 시간이 길지 않아서 몇 군데만 구경하기로 했다. 내가 하노이에서 색다른 곳이 없냐고 물어보았다.

" 하노이에 북한 식당 있는데 가볼래?"

베트남에 북한 식당이 두 군데 있었다. 하지만 호찌민 북한 식당은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았다. 하노이만 남은 것이다. 마침 평창 올림픽 개막을 막 했던 시기였다. 민족 대통합을 위해 우리는 북한 식당을 찾아갔다. 북한에서 만든 평양냉면이 얼마나 맛있는지 궁금했다. 

도착한 북한 식당은 조용했다. 한국과 북한 분위기가 안 좋아지면서 손님들의 발걸음이 많이 줄었다고 지인이 이야기해주었다. 들어서자 누가 들어도 북한 사람인 줄 아는 북한말로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처음 보았을 때 종업원들이 정말 예쁜 분들이셨다. 남남북녀라는 말이 사실이었나. 남한의 남자 평균치를 깎아 먹어서 새삼 미안했다.

 

평양관의 평양냉면 / ⓒ유영준

평양냉면을 시켰다. 대동강 맥주도 있다고 해서 한 병 시켰다. 북한 평양에서 직접 수입한 맥주라서 가격이 비쌌다. 한 병에 25만 동(1만2천 원)이나 했다. 딱 한 병만 시키고 이후부터 4만 동(2천 원) 칼스버그를 시켰다. 

평양냉면 맛을 이야기하자면 정말 맛있다. 한국에서 먹던 냉면과 맛이 달랐다. 뭐라 정확히 표현하기 힘들지만, 더 달고 맛있었다. 정말 평양냉면은 강력히 추천한다. 반찬으로 나온 김치도 맛있었다. 아삭아삭한 것이 그냥 김치만 먹어도 훌륭한 안주가 될 것 같았다. 김치를 정말 많이 주셨는데 다 먹었던 기억이 난다. 대동강 맥주도 있다면 꼭 먹어보기 바란다. (없을 때도 있다) 한국의 맥주와는 비교도 안 되는 달달하면서 깊은 맛이 난다. 너무 쓰지도 않고 가볍게 마시기 딱 좋은 맥주였다.

대동강 맥주 / ⓒ유영준

"평창 올림픽 보셨어요?"

"안봤습네다. 좀 보여주시와요."

사람이 없어서 종업원들과 이야기를 조금 나눌 수 있었다. 평창 올림픽이 막 시작했고 남북한이 공동 입장했던 만큼 티브이로 보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전혀 보지 못했다고 했다. 핸드폰도 사용할 수 없고 식당에서는 북한 공연만 계속 흘러나왔다. 그래서 유튜브로 평창 올림픽 개막식을 틀어주었다. 또 김여정 부부장과 평양예술단 공연도 보여주었다. 김여정 부부장이 나올 때 종업원들이 경외와 존경의 눈빛으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느꼈다. 예술단 사람들도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들으니 정말 북한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구나 느꼈다. 

해외 북한 식당에 일하는 분들은 보통 3년 정도 일하고 북한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다시 돌아가면 어떨까. 올해는 남북한 공동 입장하고 정상회담을 하고 비핵화가 진행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화해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언젠가 다시 만나서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서로가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식당을 나섰다.


너무 추웠던 2월의 사파 / ⓒ유영준

3. 너무 추웠던 사파

도착한 사파는 생각보다 훨씬 추웠다. 2월 초의 날씨는 영하 1, 2도를 기록할 정도로 맹추위를 자랑했다. 1년 내내 30도 이상을 기록하는 호찌민에서 갑자기 영하의 사파에 도착하니 죽을 맛이었다. 길도 비가 와서 그런지 얼어있었고 여기저기 눈이 쌓여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유명 휴양지였지만 비수기 시즌이라 사람도 적었고 문을 닫은 가게도 꽤 보였다. 

문제는 숙소였다. 베트남은 난방시설이 없다. 에어컨 온도를 높여서 따뜻한 바람으로 방 안을 데우는 수밖에 없었다. 하노이 호텔은 빵빵하게 따뜻한 바람이 나와서 편하고 아늑하게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사파 숙소는 따뜻한 바람이 나왔어도 방 전체는 여전히 추웠다. 

바깥은 더 추워서 사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카페에서 보냈다. 최대한 따뜻한 카페나 온풍기가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사파에 지내는 동안 숙소 안에서도 패딩을 입고 있는 웃지 못할 풍경이 연출되었다. 겨울철 사파는 오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힐링하러 갔다가 혹한기 훈련을 찍고 왔다.

 

4. 18세 당구 신동 

사파에 왔는데 밤에 술 한잔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인과 괜찮은 펍을 찾아다녔다. 먼저 따뜻한 곳이어야 했다. 생각보다 따뜻한 펍을 찾기 매우 힘들었다. 사파는 작은 동네였고 많은 가게가 문을 닫거나 난방시설이 전혀 없는 곳이 많았다. 어떻게 겨울을 보내는지 참 궁금했다. 몇 군데 찾다가 결국 숙소 근처의 한 펍을 들렀다. 난방시설이 좀 덜했지만 숙소 근처였고 그나마 다른 곳보다 나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펍 한쪽에 당구대가 있었다. 차례를 기다려 나와 지인이 당구를 쳤다. 옆에 한 베트남 소년이 보고 있길래 같이 치자고 물어보았다. 생각보다 영어를 잘했다. 알고 보니 바로 옆 호텔에서 일하는 소년이었다. 올해 나이 만 18세. 일 마치고 여기에 항상 오는 것 같았다.

사파에서 만난 18세 당구 신동 / ⓒ유영준

일이 참 힘들 텐데 소년은 항상 쾌활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방실방실 웃으니 같이 기분이 좋아졌다. 독한 술을 마셔서 취기가 한껏 올랐고 소년과 재밌게 당구를 쳤다. 생각지도 못한 인연의 만남이 혹한기 훈련같던 여행에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 소년을 만나기 전까지 우리는 힘든 날씨와 생각보다 조용한 사파에 실망해 있었다. 소년의 합류가 여행을 다시 즐겁고 재밌게 만들어 주었다.

 

크리에이터 유영준 / [email protected] 

2016년 12월에 베트남 호찌민에 처음 왔습니다. 호치민의 한국 회사에서 일을 했고 현재 호찌민에서 베트남의 산업과 트렌드 및 여행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https://brunch.co.kr/@yyjzang


0
이 글을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이 글을 트위터로 퍼가기 이 글을 카카오스토리로 퍼가기 이 글을 밴드로 퍼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