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여수에서 찾은 이순신의 흔적, 500년 시간 여행을 떠나다

[여수] 여수에서 찾은 이순신의 흔적, 500년 시간 여행을 떠나다

여수 돌산대교 / 사진=뉴스포픽 박영진 기자

[여는말] 한국사에서 가장 존경 받는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꼭 등장하는 사람이 이순신(李舜臣)이다. 이순신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수군으로부터 남해안 지역을 보호하면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유례없는 승리의 역사로도 유명하다. 특히 첫 전투였던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한산도대첩과 명량대첩 그리고 전사했던 노량해전 등은 현재까지도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될 만큼 믿기 어려운 놀라운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이렇게 그가 활약했던 남해안은 현재 국내여행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발돋움했다. 특히 그 중심에는 여수가 있다. ‘여수 밤바다’라고 하는 별칭이 생겼을 정도로 여수는 아름다운 바다와 수많은 섬, 그리고 바다 위에 펼쳐져 있는 다리 등으로 근사한 풍경을 자랑하는 도시다. 그러나 이런 낭만이 펼쳐져 있는 곳은 지금으로부터 520년 전 이순신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필사 즉생의 각오로 싸우던 격전지였다. 또한 이순신 드라마에 흔히 나오던 전라도 수군의 중심지인 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도 바로 여수에서 위치해 있었다. 지금부터 그 격동의 현장으로 떠나보자.

 

여수 이순신광장 부근에 있는 진남관 입구 / 사진=뉴스포픽 박영진 기자 

 

이순신과 조선 수군의 정기, 진남관

이순신 광장 외에도 이순신의 정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또 있는데 바로 진남관이다. 진남관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324호로 지정됐다가 2001년 4월 17일 국보 제304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본래 건물이 있는 자리는 이순신이 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의 본영으로 사용하던 곳이었으며 당시에는 진해루라는 누각이었다. 그러나 진해루가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 의해 불에 타 소실되자 1599년(선조 32) 삼도 수군 통제사 겸 전라 좌수사로 부임한 이시언이 전라좌수영 건물로 75칸의 거대한 객사를 지어 진남관이라 이름 짓고 수군의 중심기지로 사용됐다.

 

이 곳이 전라좌수영 건물로 쓰였다는 것은 이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만으로도 알 수 있다. 진남관의 대문 역할을 하는 2층 누각 망해루를 지나 계단을 따라 올라가보면 여수 앞바다가 한 눈에 펼쳐진다. 진남관이 있는 위치가 언덕 위에 있다 보니 이렇게 바다가 바로 보이는데, 지형적으로 수군들이 전술을 짜기에 더 없이 좋은 위치가 아닐 수 없다. 이 망해루는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으나 재 복원됐다.

 

안타깝게도 현재 진남관은 2020년까지 보수공사로 인해 매주 토요일에 방문예약을 하지 않으면 입장이 불가능하다. 진남관은 정면 15칸, 측면 5칸, 건평 240평(약 780㎡)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된 거대하고 웅장한 건물로, 현존하는 지방 관아 건물로는 제일 크다. 정면 15칸, 측면 5칸 총 75칸이 되는 건물은 우리나라에서 사찰이나 화랑, 궁전의 행랑, 종묘의 정전 같은 건물을 제외하고는 합천 해인사의 경판고와 진남관 단 두 곳뿐이다.

 

현재 진남관 입구 왼편에는 비석들 여러 개가 함께 모여 있다. 이 비석은 임진왜란 당시 이 곳에서 싸우다가 전사했던 수군들을 위한 비석으로 그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두 곳을 둘러보고 난 후 다시 바다를 바라본다. 낮에 본 바다는 조선 수군과 사람들의 치열했던 전투의 현장을 모두 알고 있지만, 우리에게 어떠한 말도 해주지 않은 채 잔잔한 파도와 바닷물이 들이치는 소리만 들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 나는 500여년의 시간 차이 속에 머릿속으로는 왠지 모를 어떤 장면의 오버랩(?)이 스쳐 지나갔다.

 

여수 이순신광장에서 바라본 여수 앞바다 전경 / 사진=뉴스포픽 박영진 기자  

 

지금 2019년은 혼돈의 시대다. 매일 같이 새로운 뉴스와 정보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5G, AI 등을 비롯한 기술 혁신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분명 외적인 환경은 갈수록 윤택해져만 가는 듯한데,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의 삶은 팍팍해지고 경제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와 억압에 눌린 영향 때문일까 흉악한 범죄들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이제는 너무나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나라와 정부에 대한 불만은 극도에 달했고, 급기야 3년 전에는 이순신 장군이 서 있는 광화문 광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촛불을 들고 잘못된 정부와 대통령에 일침을 가했다.

 

이순신이 살아갔던 500여년 전도 지금과 같은 혼돈의 시대였다. 비록 정보화된 사회는 아니었지만, 왜적의 침입으로 인해 온 나라는 피폐해졌고 죄 없는 수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국가 경제는 물론 나라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르는 극도의 위기와 혼돈이 뒤섞인 시대였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충신들이 있었기에, 조선이라는 나라는 끝내 임진왜란을 이겨낼 수 있었다.

 

비록 같은 시대는 아니지만 같은 땅을 살고 살아갔던 사람들로서 그리고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왠지 모를 동질감과 같은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500여년전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던 것은 조선 조정이 아닌 충신들과 백성들이었고, 2010년대 민주주의에 크게 흠집이 나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던 때에 다시 바로잡고자 일어섰던 이들도 국민이었다. 나는 이순신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렇게 느꼈다. 역사는 물리적인 시간과 상관없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여수에서 만난 이순신은 그러한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0
이 글을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이 글을 트위터로 퍼가기 이 글을 카카오스토리로 퍼가기 이 글을 밴드로 퍼가기